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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군대 따마도의실체, 국제적개입의 정당성
    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21. 5. 9. 16:23

    한국을 포함한 서방의 언론들이 소수민족무장단체, 이제는 민족연방군이 되었으니 연방군으로 부르자, 의 승전보를
    전하고 있다.

    소수민족무장단체와 시민무장세력이 힘을 합치면 미얀마반란군부를 몰아낼수 있을것 같은 환상을 대중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얀마 민주주의는 소멸이냐 잔존이냐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수치를 포함한 NLD 주요 구성원들이 구속이 되고
    석달이 지났다.

    군 총사령관 민아웅라잉은 전 정부 군부몫의 부통령이었던 민쉐를 임시대통령으로 지명을 하였다.민쉐는 미얀마군 중장출신으로 양곤도지사를 하였고 NLD정권에서 군부가 지명한 부대통령을 한다가 대통령대행으로 지명받았고 즉시
    군부의 국가행정위원회 민아웅라잉에게 권력을 이양하였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대행을 맡자마자 계엄사령관 전두환에게 권력을 넘긴것을 기억하면 정확히 일치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딴쉐아래서 장성으로 승진을 거듭한후 중장으로 예편하고 군정에서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양곤도지사를 역임한 후 민아웅라잉에게 부통령으로 추천된것만 봐도 쿠데타 정부JUNTA에서 대통령권한 대행이 된것은
    매우 당연하다.

    따마도

    미얀마 군은 우리가 생각하는 국민에게 복무하는 국방을 지키는 군대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버마군의 역사는 90녀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영국식민지시절 1930년 당시 버마족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여러 버마족군벌을 통합하기 위항여 마웅지에 의해 첫번째 용감한 군대땃တပ် 으로 제안되었다.

    만 2차세계대전으로 영국의 지배력이 약화된 30년대말 샨주등 스테이트 지역에서도 소수민족 역시 우후죽순으로 여러 군벌로 생겨났다.

    아웅산장군이 이차대전 미얀마를 점령한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 버마군벌과 소수민족군벌을 통합하여 항일 전쟁을 벌였다. 일본의 2차대전 패배후 영국은 1948년 버마를 독립을 승인하였다.독립후
    애초의 약속인 소수민족 독립 약속은 취소가 되고 아웅산장군이 의문의 피살을 당하였다.
    이때부터 독립군벌들은 버마군과 소수민족반군으로 나뉜다. 버마군벌은
    1962년 네윈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우누정권을 쓰러뜨린후 강력한 중앙집권 군대정권체계를 만들었다.

    조금 길게 설명을 한것은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 아래 군이 있는것에 반하여 미얀마는 애초부터 군벌연합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후 비버마족 군벌은 자신의 민족중심으로 군대를 유지하였고 버마군 역사 만큼 오랜 90년 동안 내전을 시작을 한다.

    그리고 네윈 딴쉐를 거치면 오십년 가까이 버마를 지배했던 버마군부는 반군으로 알려진 소수민족 군벌을 군대 Tatmadaw 따마도로 병합을 시작을 한다.이것을 국경수비대 Boarder Force Guard라고 한다.

    2015년 전국적인 평화협정 NCA National Casefire Agreement 를 체결하기 전까지 이미 가장 독립투쟁이 거세었던 지역의 반군들이 BGF로 재편성이 되며 미얀마군대로 병합이 되었고 소규무장세력은 민병대 PMO로 재편을 하였다.
    KNLA와 SSA KIA등 정부군이 제안한 BGF를 거부한 반군세력들과 기존
    BGF 리폼 무장세력중 BGF 변경을 거부한 세력들이 남아 지금의 소수민족 무장세력이라고 불리고 있다.


    미얀마 내전을 바라볼때 정부군의 또 다른 축인 소수민족으로 재편된 BGF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란이 본격화 되면 따마도는 이이제이로 BGF로 소수민족 무장세력을 제압하려고 할것이 분명하다.이것은 미얀마쿠데타군부에게 여러가지 잇점을 준다. 우선 종족간 내전으로 외부에 홍보를 할수있고 로힝야 학살들 제노사이드의 악명에서 벗어날수 있다.
    더불어 자신들의 반란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효과와 더불어 버마족을 둘러싼 스테이트 민족무장세력을 약화시키는 도랑치고 가제잡고 동전줍는 일석삼조이상의 잇점이 있다.

    미안마 훈타JUNTA 따마도는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 다음으로 강력한 무장을 하고 있다.

    육군 따마도 찌는 50만명의 병력과 천여대의 장갑차 팔백대가까운 전차로 무장하고 있고 공군 따마도 레는 미그21,25,29등 200대의 전투기가 있다.

    해군 따마도 예는 세척의 3,500톤급 러시아 잠수함을 인도에서 중고로 들여왔고 열척의 프리깃과 상륙함이 있다.
    이것은 안다만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소수민족무장 연합이 모두 합쳐도 인접국 라오스나 방글라데시조차도 이길수 없다. 태국은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미얀마 정부군을 이길수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환상이다.

    시민군은 보안군과는 전투도 되지 못하고 민족 연방군의 모든 전력으로도 국경수비대의 전력에 미치지 못한다.

    국경수비대 BGF

    미얀마 따마도의 다른 세력인 국경수비대는 정부군의경보병LIB와 유사한 무장을 갖추고 있다.

    400명으로 부대가 구성이 되고 사령관 1명에 부사령과 1명 부관이 3명이고 이중에 한명은 미얀마정부군이다.
    그리고 하사관과 330명의 병사로 한 단위를 이룬다.

    전국적으로 1001로 부터 시작하여 1023까지 23개의 국경수비대BGF가 있으니 공식적으로 만명가까운 숫자가 있다.
    이들외에 100명으로 구성된 30여개의 민병대가 있으니 공식적으로 정부군 따마도에서 월급을 받는 숫자가 만삼천명가까이 된다.

    정부군에서 월급을 받고 막사에서 지내고 정부군의 군복과 무기를 받오 매일 훈련을 하는 BGF는 몇년 사이 정부군 경보병부대LIB와 대등한 개인전투력을 갖추었다

    현지 정보와 지형에 익숙하고 훈련된 이들이 신병과 훈련량이 부족한 민족연방군과 싸우면 승패는 거의 결정이 된다고 볼수 있다.

    실제로 지역내 소규모 충돌에서 정부군은 소수민족 반군에게 패한적이 자주 있지만 BGF가 패한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같은 종족이라 특별히 민감한 잇슈가 없는한 충돌을 자제할 뿐이다.

    DKBA-5 사령관이었던 내 친구 보모똥은
    DKBA중 가장 늦게 BGF에 합류를 하였다.
    정부군과 기존에 DKBA 끌라뚜보 파였다가 BGF로 리폼된 칫뚜가 미야와디를 공격하자
    KNLA7 소포도 장군과 연합하여 정부군 연합과 전투를 벌인 그 였기 때문에 BGF참여의 이유가 궁금했었다.

    직접 물어볼정도는 되는 사이라 어느날 정부군이 지어준 BGF기지를 방문하여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제 전쟁은 지쳤다 라고 했다.
    열다섯에 반군이 되어 오십이 되었으니 중이 되어 쉬고 싶고 동족들도 이제는 평화롭게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는냐고 했다.

    그의 대답에서 단박에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수 있었다.
    작년말 귀국하여 BGF 사령관 소환과 사임소식을 접하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을수 있던 이유이다.

    민족연방군과 대결을 할 BGF는 입장이 갈리고 있다. 정부군의 일부로서 적극적으로 동족과 전투를 벌일 BGF와 중립을 지킬 BGF이다. 이것은 휴전을 하며 BGF로 편입될 당시 정부군이 선물한 지역에서의 경제적 잇권이 있기 때문이다.

    반군소탕의 적극적 가담파와 중립파는 휴전 연도로 나누면 거의 정확하다.
    2010년을 기점으로 이전에 BGF로 재편된 국경수비대는 자발적으로 정부군에 가담한 세력이고 그 이후 리폼된 BGF는 반 강제적으로 재편된 세력이다.

    2010년 테인세인 대통령이 취임을 하며 미얀마의 개발을 위해서는 중앙정부를 둘러싼 스테이트 지역의 안정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를 하고 소수민족측과 협상을 하며 평화에 대한 확신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동시에 군부는 잇권과 압력으로 소수무장세력을 회유하여 2013년 1차 평화협정까지 국경수비대로 재편을 하고 국경지역의 관할을 맞겼다. 물론 국경무역,카지노,상업,자원개발등 잇권을 포함하여서 말이다.

    중국과 접한 샨스테이트는 마약왕으로 유명한 골든트라이앵글의 쿤사부대 부터 대부분의 반군이 2010년 이전에 이미 국경수비대로 재편되었다.가장 큰 스테이트인 샨은 와족 따이야이족 리수 라후 몽족등 여러 종족이 살고 있고 무장조직 역시 종족만큼 다양하였다.

    중국의경제가 커지면서 중앙정부나 반군이 구지 반목을 할 이유도 없고 거리도 멀어서 위협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경의 통관 이익과 자원개발의 이익만 서로 나누어도 충분했다.

    반면 태국과 접한 카렌스테이트는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일단 가장 오래된 KNY 단일 조직이 있었고, 대부분의 지역이 카렌족 단일 종족이기 때문에 분열정책도 먹히지 않았다. 유일하게 성공한것이 종교로 분열을 시킨 것이다.1995년 파안의 사찰을 폭격하여 KNU내 불교도와 기독교도를 이간시켜 불교도 중심의 DKBA와 KNLA로 분리한 것이다.

    이 DKBA중 끌라뚜보 파는 일찌감치 BGF가 되었고 주전파인 DKBA5는 가장 늦게 2013년 5월 1차 평화협정 당시 BGF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10월 전국적 KNLA SSA MMA 대규모 민족무장세력과 전국적인 평화협정을 맺었으나 이들은 BGF리폼을 검수하고 아웅산수치 정부에게 페더렐 아미
    연방군을 요구를 하였다.

    결국 아웅산수치 민간정부에서도 연방군합류믄 좌절 되었다가 국민통합임시정부에서 연방군의 꿈을 이루 었다.

    이제 BGF와 반란군 따마도에 대하여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마피아 따마도 = 군벌 = 재벌

    지름 미얀마 훈타,JUNTA 군사 반란으로 정권잡은 권력,는 군벌집단이라고 보면 틀림없이 정답이다.

    일본 막부가 이차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미국에의해 맥아더에의해 와전히 해체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미얀마 군부의 모습일 것이다.

    군벌막부 따마도는 경제적으로는 미얀마 데부분의 잇권을 장악하고 있는 독점재벌이고 정치적으로는 의회까지 독점을한 훈타JUNTA이다.

    이들을 국민의 군대 영토를 지키는 군대로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벌의 이익을
    지키는 사병이고 맥시코 마약카르텔 이탈리아 마피아의 미얀마식 이름일 뿐이다.

    지금의 미얀마는 정권을 잡은 마피아이다.

    국제적 개입의 정당성

    PKO, R2P 개에게나 줘버려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는한 가능하지도 않고 헛된 희망만 남발할 다름이다.

    옆집에 강도가 들어 식구를 겁박하고 위협하면 가장 경계해야 할 집은 바로 옆집이다.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등 아세안을 말하는 것이다.그런데 세월이 참 요상도 하지.

    불해히도 이웃도 초록이 동색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뿌라윳은 민아웅라잉과 호형호제이고 캄보디아 훈센도 공산당 일당국가 라오스도 사정이 비난할 입장이 안되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한다리 건너처럼무관심하다.

    동남아시아국가들이 쿠테타로 군사독재국가가 된다면 동아시아는 안전한지 모르겠다.

    한국은 동북아라서 독재국가던 자유국가던 광만 팔면 될것같다.지금까지 그랬던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실용외교라고 화장을 한다.

    동네 깡패가 주인이 되면 옆동네는 피해다녀야 한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대포와 총앞에서 자신들의 민주주의는 자신이 지켜라라는 말을 이성적으로 이해를 하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칠백명이 넘게 사살을 당하고 소수민족은 매일 공습을 당해 삼만명 사만명이 집을 잃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외교와 실리를 따지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따마도 근들이 하는짓이 왜곡된 애국일지 다른 형태의 신념일지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보고 찾아보았다.
    21세기 인류라고는 생각할수 없는 잔인함을 동족에게 자행하고 집단학살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목격하며 그래도 목숨은 부지하면 언젠가는 좋은날이 올거야 라는 신념이 사라렸다.

    따마도의 반란이 국제적으로 용납된다면 미얀마인에게는 백년 불행의 시작이겠지만 경제동물이라 비아냥 거렸던 일본을 향한 손가락질이 우리에게 향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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