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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JUNTA 따마도와 전쟁을 선포하고 국민통합정부 연방군에 참가 무장그룹
    PEOPLE/세상을 보는시각 2021. 5. 7. 16:25

    5월이 되며 국민통합정부에 참가한 민족무장단체가 연방군으로 빠르게 재편이 되고 있다.
    기존의 영역과 모양은 유지하고 전국적인 전투를 시작하였다.

    민족통합정부에 참가한 PPST Peace Process Steeling Teams 그룹중 카렌스테이트 카렌족의 KNU의 밀리타리 윙인 KNLA ,KNDO가 전투에 참가하였고
    카친스테이트 KIO Kachin independent organization의 군부KIA에 전투를 하고 있다.


    KNU watch



    AA 아라칸주의 아라칸군이 국민통합정부의 NUG 연방군 Fedaral Army에 새로 참가했고 샨스테이트의 TNLA Taang National Liberaty Army가 연방군에 합류하였다.


    KNU watch



    그리고 특별하게도 미얀마군과 20년전 가장 먼저 휴전을 한 MNDAA가 연방군에 참가를 하였다.

    현재까지의 연방통합군에 합류한 병력을 살펴보자.



    KNU깃발

    카렌족은 미얌마 최배의 소수민족이다.약 1,000만명 내외로 추정이 되고 양곤남부와 이라와디 델타 바고 디비젼에 거주하는 Sgaw카렌족과 카렌주 중북부의 포카렌족이 있고 남부의 몬주와 타린따이 디비젼 전역에 걸쳐있다.

    샨주의 면적이 제일 넓어 샨족이 최대민족이라고 알려졌는데 사실과 다르다.
    샨주는 최대 민족이 따이야이Taiyai족과 빨라웅 라후 와족등 여러종족이 모여있고 이중 최대민족이 600-700만명으로 추산이 되는 따이야이 족이다.

    전국적 인구조사에서 산악과 밀림의소수민족은 집계가 되지 않은 오류이다.

    1949년부터 카렌족은 KNUKaren National Union를 만들어 70년을 독립투쟁을 한 민족답게 무장그룹도 많이 있다.

    KNU의 KNLA가 15,000명으로 가장 많고 계속 증가중이다.전투가 격화되며 1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는 평화협정으로 귀가한 노병들이 빠르게 복귀하고 있고 비전투 예비병력들이 전투병으로 전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KNU의 또 다른 무장세력 KNDO는 약3,000명이다. KNU의 실력자 보먀의 아들 소먀가 대장이다.몆년전 이 마을의 축제에서 만난적이 있다.소먀는 기독교인으로 사람이 호탕하고 인간관계가 좋다.미야와디에 근거를 두고 있다.

    KNU의 KNLA-pc 역시 3,000명내외이다.
    타이거대령이 이끌고 있다.치앙마이에서 대학을 나온 인텔리이다. 꺼까에익이 주 근거지 이다.타이거를 처음 만난것이 한 십이삼년쯤 된것같다. KNU밀리터리윙
    사령관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KNU의 밀리터리윙중 KNU-DKBA가 있는데 병력은 KNLA의 전체와 비견될 만큼 많다. KNU와 결별하였다가 2018년 재합류하였다.카렌남부DKBA지역은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다.

    KNU 밀리터리 윙 전체 정규전투병력은 3만명내외이다. 그러나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약 20만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KIO깃발

    카친해방군은 전국적 평화협정에도 서명하지 않고 최근까지 바마정부군 따마도와 전투를 하고 있다. 병력은 15,000명 내외이고 전투중인 부대답게 사기도 높고 무장도 좋다.정부군의 탱크나 장갑차등 중화기만 없다면 따마도보다 전투력이 뛰어나고 게릴라 전술에 특화되어 있다.

    카친스테이트 수도 미찌나까지 진출하여 전투를 벌이고 있고 며칠전에는 정부군 헬기를 격추하였다.

    KIA 병사들


    현재까지는 KNLA와 더불어 연방군의 핵심전력이다.


    TT'ang liberation Army

    따앙 민족해방군은 트레킹으로 유명한 샨주의 시포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그룹이다.
    PSLF 빨라웅스테이트인민전선의 무장그룹이다.6,000명의 병력을 보유호고 있다.이 그룹은 특이하게 Anti drug을 표방하고 있다.

    근거지는 Namsan이다. 매우 호전적이고 다혈질의 반군중 하나이다. 따마도에게 따앙반군이 위협적인 것은 중국과 연결하는
    도로의 물류를 위협할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짜욱퓨 가스관에 직접적인 공격을 할수 있는 위치에 근거지를 갖고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시포,인레,껄로등 산악지역이 주무대이다.
    빨라웅족의 독립을 원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빨라웅족

    빨라웅족은 중국 운남성 일대의 소수민족
    De'ang 드옹족의 일파로 남산Namsan자치지역에 주로 거주를 하고
    빨라웅어를 사용한다.빨라웅족은 100만명내외로 추정이 된다.

    중앙정부와 휴전을 거부하고 전투를 벌였으며 같은 샨주의 RCSS무장그룹SSA-S와는 경쟁관계이다.
    이는 SSA south가 마약재배에 관대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 원인이다.

    SSA-south

    SSA south샨스테이트남부군은 RCSS Recovery Council
    Shan State 샨스테이트 복원위원회의 무장그룹이다.

    샨주의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고 태국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샨주 남부가 이들의 주 영역이다. 종족은 따이야이 Tai yai족으로 따이야이 어를 사용한다.
    바마족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예전에 아이와살림을 돌봐주는 친구가 따이야이 족이었다. 자신은 따이야이 국민이고 아직 국력이 약해서 미얀마 돈과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했던 기억이 있다.

    따이야이족Taiyai은 세부적으로 더 많이 나눌수 있는데 따이 느아, 따이 쿤, 따이 루족등으로 나뉘지만 큰 의미는 없다.
    따이야이족은 태국의 북부와 샨주남부에 분포해있고 따이야이어를 태국의 북부어와 매우 유사하다.
    따이 야이와 따이 느아 역시 바로 태국어로 번역가능할 정도이다. 따이 야이는 큰 따이족이라는 뜻이고 따이느아는 북쪽 따이족이라는 뜻이다.

    태국 시암왕조가 따이야이 족으로 부터 출발하였다고 한다.치앙마이 란나왕조와 더 깊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2015년 정부군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을 하였다. 휴전협정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 따마도에는 매우 호전적이다.
    남부샨군의 약 3만명으로 추정이 된다.


    MNDAA

    샨주의 미얀마 민족민주동맹군이다. 샨주 북부 코캉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무장그룹이다. 우리에게는 코캉반군으로 익숙하다.
    코캉독립을 위해 최근까지 버마정부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지역은 원래 중국의 영토였고 지역 주민 대부분이 운남성의 소수민족계역이고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마약유통과 제조 유통관이라는 잇권을 갖고 있어 민족연방군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NUG에 참여하여 의문이긴 하다.
    병력은 3000명 정도이다.


    아라칸 군


    AA Arakan Army는 카친주를 라이자를 기반으로한 무장조직이다.
    KIA와 함께 따마도와 전투를 벌였다. 본부와 상관없이 활동영역은 친스테이트와 라카인스테이트이지만 2009년에 출범을 하여 영향력은 크지 않다.

    방글라베시 국경근처에서 정부군과 몇번의 충돌이 있었다. AA는 방글라데시로 부터 이주한 로힝야족에 대한 극심한 작개심을 갖고 있고 최근 로힝야 사태를 키운 당사자이기도 하다. 로힝야 문제에서는 따마도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병력은 약 3,000명 내외이다.

    이상이 현재까지 민족통합임시정부의 연방군에 합류한 무장세력이다.이제는 정식으로 민족연방군이라고 부르는것이 옳을것 같다.

    원래 정규 병력은 5만명 내외로 추산되지만
    빠르게 비무장병력이 무장되고 있어서 지금은 10만명 이상으로 증가를 하였다고 추정할수 있을것 같다.본격적인 내전이 벌어지면 약 50만영 이상으로 늘어날수 있다.

    왜냐하면 지원자위주의 병력에서 총을 쏠수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무장 단체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카렌졸만 해도 밀림롸 산간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열두셌이면 총을 쏠줄알고 집집마다 소총정도는 챙켜놓은 것은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카렌 밀링을 다니며 AK47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군대시절 사용하던 M16보다 무겁고 반동이 심해 놀랬던 적이 있다.

    무장단체에 대하여 여러 기억들이 많은것은
    국경에서 만나고 친해진 사람들이 대부분 소수민족 카렌족이었던것이가장 큰 이유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친해질수 있었던것 같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바라면서도 선뜻 내전에는 동조하지 못하는 이유가 게릴라전만으로는 이길수 없고 그곳의 평범함 삶은 모두 포기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얀마에서는 모든집에 외부인이 묵으면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 새로 생긴것 아니다. 2015년 이전에는
    외국인은 일반 가정집이나 외국인 숙박을 허가받지 않은 호텔에서는 잘수없었고 이를 어기면 경찰서로 끌려갔었다.

    파안과 양곤에 매장과 직원숙소가 있어도 출장을 갈때마다 외국인 체류허가 숙박업소에서만 잠을 잘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모든 외지인은 숙박시 신고를 해야 했다.

    그것이 민간정부가 들어선 후 사문화되었다 살아난 것이다.

    그때는 큰 동네에도 중학교가 없었다.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겨우 마칠수 있었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했다.
    책과 연필만 겨우 반군 지역사령관이 지급을 했고 선생은 거의 대부분이 모급봉사였다.
    민간정부가 들어서고서야 열명에 세명이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동을 할때마다 경찰서에서 여행허가증을 받아야 했고 외국인은 허가받은 도시외에는 방문을 할수 없었다.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몇년전 민간정부전의 일이다.

    시계가 꺼꾸로 돌아가 버렸다.

    이미 내전이 시잘이 되었고 오래 걸릴것 같다. 중국과 미국이 개입이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의 몫이다.

    피할수 있다면 피하라고 권하고 싶은데 이미
    전쟁은 시작이 되었다.


    소포도 장군이다.KBS인터뷰후 보내주신 사진이다. 진갑이 내일 모래인데 밀림에 계신다. 얼굴이 퉁퉁부었다. 개인적으로 나의 큰 형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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